또 새로 가게가 문을 열었다. 같은 자리에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그만큼 개폐업이 잦다. 매번 재공사를 할 때마다 이렇게 저렇게 꾸며 새 단장을 하는데 장사를 접을 때 보면 보는 내가 허망하기까지 하다. 정감이 쌓이기는커녕 시간의 흔적조차 남기 어렵다.
말죽거리에서도 꽤 오랫동안 신선한 원두커피를 매일 아침에 내려 팔아온 카페가 올초 어느날 폐업을 했을 때는 정말 많이 아쉬웠다. 우리나라 원두커피 문화를 개척한 1세대 바리스타라고 했던 주인 아저씨는 처음 그곳에 문을 열 때부터 범상치 않았다. 요란한 가게 인테리어보다 늘 선도를 유지하는 원두의 품질과 내리는 과정의 솜씨와 정성을 중시하는 장인이었다. 이른 아침 문을 열고 콩을 볶고 갈고 내릴 때 그 근처를 지나가면 고소한 커피향이 바깥까지 풍겨 나오는 듯했다. 가게 문을 열 때만 해도 나는 맘속으로 이런 구식 카페가 얼마나 갈 수 있을까 측은하게 여기기까지 했다. 하지만 웬걸, 가게는 여러 해를 의연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단골 손님도 생긴 듯했다.
그러던 올해 갑자기 가게 문이 한동안 닫혀 있더니 얼마 후에는 입주해 있던 건물의 리모델링 공사가 시작되었다. 아쉬운 마음도 잠시, 그 자리에 또 무엇이 들어올지 궁금해졌다. 공사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느리게 진행되었고, 이 동네 여느 곳과는 달리 제법 정성을 쏟는 것 같았다. 계단만 있던 건물 전방에 장애인을 위한 경사로가 만들어진 것만도 눈에 띄는 일이었다. 그곳을 지날 때마다 고개를 들던 호기심은 점점 기대로 변해갔다.
어느날 공사가 채 끝나기도 전 간판이 내걸렸다. 역시나 카페였다. 다소 실망스럽긴 했지만 '대체 어떤 카페이길래' 하는 새로운 호기심이 일었다. 더구나 카페 간판에는 사람의 실명인 듯한 이름이 크게 내걸려 있었다. '또 다른 명인 바리스타의 왕림인가?' 싶었다.
그 뒤로 점점 가게가 형체를 갖춰 가면서 개업은 초읽기에 들어가는 듯했다. 드디어 개업일. 그 날이 언제인지는 나는 모른다. 다만 그즈음해서 가게 앞에 축하 화환이며 화분이 줄지어 놓여 있어서 그런 일이 있은 줄 알았다. 화환이나 화분의 리본에 적힌 이름들을 보면 카페 주인이 '문인'이거나 '출판' 관계된 사람인 것 같았다. '북카페'인가? 실제로 흥미로운 점은 카페 지하에 말 그대로 작은 도서관도 함께 문을 열었다는 사실이다. 구경 삼아 들어가 봤더니 아늑하게 꾸며진 공간에 서가와 긴 탁자가 놓여 있었다. 마치 어떤 독서가의 큰 서재, 혹은 작은 어린이 도서관 같아 보였다. 입구에 붙은 안내문을 보니 평일 주간에는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살다 보니 말죽거리에 이런 곳도 생기는구나. 놀라웠다.
엊그제 아침 메일함을 열어 보다가 깜짝 놀랄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 북클럽이 오랫동안 이용해온 공유오피스가 개인회원 사업을 접는다는 통지를 받은 것이다. 이런 식의 이메일을 통한 일방 통지는 처음도 아니고, 요즘은 이 회사만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로 인한 당혹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새 시즌 시작을 앞두고 이미 장소 공지까지 된 상태였다. 앱에 연결된 채팅창을 열고 봇과 옥신각신하거나 사정을 하소연하느니 빨리 다른 곳을 알아보는 게 낫겠다 싶었다. 우선 가끔씩 사용하곤 하는 구청 문화관의 회의실을 예약해 두었다. 마침 원하는 날짜와 시간에 자리가 비어 있어 다행이었다. 그런 다음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찬찬히 대안을 떠올려 보았다. 불현듯 한 곳이 떠올랐다.
이미 짐작하시겠지만, 내 머릿속에 형광등처럼 떠오른 그 곳은 바로 그 북카페, 작은도서관이었다. 그런데, 평일에만 이용할 수 있다고 되어 있던 그 공간을 주말에 우리 독서 모임을 위해 내어주실까? 어떻게 사정을 해야 할까? 허락을 받더라도 사용료를 내야겠지? 얼마나 요구할까? 이런저런 질문과 답변을 혼자 앞질러 해가며 카페로 찾아갔다.
카페지기는 이 건물의 회사측과 상의를 해야 한다며 잠시 자리를 비우더니 돌아와서 말했다. "사용해도 좋다고 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본래 취지에 맞는 용도로 활용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까지 덧붙여 주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일상의 기적들을 믿는다. 오늘 작은 것 같지만 생각해보면 엄청나게 큰 행운에 취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사실 나는 그런 체험이 꽤 많다. 가령, 지난주 지방에서 예정된 독서 모임을 깜박하고 취소된 줄 알고 있다가 정말 우연히도 그 모임을 여는 책방 주인이 다른 일로 무심코 안부 전화를 했다가 내가 깜박하고 있었던 사실을 알게 되어 큰 탈이 없었던 일은 사소한 예에 속한다.
맨 처음에 소개한 1세대 바리스타 아저씨의 카페 이름이 뭔지 빠뜨렸다. 이제 알려드릴 때가 된 것 같다.
Cafe Wonder.
세상은 작은 기적과 놀라움들로 가득하다.
말죽거리에서도 꽤 오랫동안 신선한 원두커피를 매일 아침에 내려 팔아온 카페가 올초 어느날 폐업을 했을 때는 정말 많이 아쉬웠다. 우리나라 원두커피 문화를 개척한 1세대 바리스타라고 했던 주인 아저씨는 처음 그곳에 문을 열 때부터 범상치 않았다. 요란한 가게 인테리어보다 늘 선도를 유지하는 원두의 품질과 내리는 과정의 솜씨와 정성을 중시하는 장인이었다. 이른 아침 문을 열고 콩을 볶고 갈고 내릴 때 그 근처를 지나가면 고소한 커피향이 바깥까지 풍겨 나오는 듯했다. 가게 문을 열 때만 해도 나는 맘속으로 이런 구식 카페가 얼마나 갈 수 있을까 측은하게 여기기까지 했다. 하지만 웬걸, 가게는 여러 해를 의연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단골 손님도 생긴 듯했다.
그러던 올해 갑자기 가게 문이 한동안 닫혀 있더니 얼마 후에는 입주해 있던 건물의 리모델링 공사가 시작되었다. 아쉬운 마음도 잠시, 그 자리에 또 무엇이 들어올지 궁금해졌다. 공사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느리게 진행되었고, 이 동네 여느 곳과는 달리 제법 정성을 쏟는 것 같았다. 계단만 있던 건물 전방에 장애인을 위한 경사로가 만들어진 것만도 눈에 띄는 일이었다. 그곳을 지날 때마다 고개를 들던 호기심은 점점 기대로 변해갔다.
어느날 공사가 채 끝나기도 전 간판이 내걸렸다. 역시나 카페였다. 다소 실망스럽긴 했지만 '대체 어떤 카페이길래' 하는 새로운 호기심이 일었다. 더구나 카페 간판에는 사람의 실명인 듯한 이름이 크게 내걸려 있었다. '또 다른 명인 바리스타의 왕림인가?' 싶었다.
그 뒤로 점점 가게가 형체를 갖춰 가면서 개업은 초읽기에 들어가는 듯했다. 드디어 개업일. 그 날이 언제인지는 나는 모른다. 다만 그즈음해서 가게 앞에 축하 화환이며 화분이 줄지어 놓여 있어서 그런 일이 있은 줄 알았다. 화환이나 화분의 리본에 적힌 이름들을 보면 카페 주인이 '문인'이거나 '출판' 관계된 사람인 것 같았다. '북카페'인가? 실제로 흥미로운 점은 카페 지하에 말 그대로 작은 도서관도 함께 문을 열었다는 사실이다. 구경 삼아 들어가 봤더니 아늑하게 꾸며진 공간에 서가와 긴 탁자가 놓여 있었다. 마치 어떤 독서가의 큰 서재, 혹은 작은 어린이 도서관 같아 보였다. 입구에 붙은 안내문을 보니 평일 주간에는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살다 보니 말죽거리에 이런 곳도 생기는구나. 놀라웠다.
엊그제 아침 메일함을 열어 보다가 깜짝 놀랄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 북클럽이 오랫동안 이용해온 공유오피스가 개인회원 사업을 접는다는 통지를 받은 것이다. 이런 식의 이메일을 통한 일방 통지는 처음도 아니고, 요즘은 이 회사만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로 인한 당혹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새 시즌 시작을 앞두고 이미 장소 공지까지 된 상태였다. 앱에 연결된 채팅창을 열고 봇과 옥신각신하거나 사정을 하소연하느니 빨리 다른 곳을 알아보는 게 낫겠다 싶었다. 우선 가끔씩 사용하곤 하는 구청 문화관의 회의실을 예약해 두었다. 마침 원하는 날짜와 시간에 자리가 비어 있어 다행이었다. 그런 다음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찬찬히 대안을 떠올려 보았다. 불현듯 한 곳이 떠올랐다.
이미 짐작하시겠지만, 내 머릿속에 형광등처럼 떠오른 그 곳은 바로 그 북카페, 작은도서관이었다. 그런데, 평일에만 이용할 수 있다고 되어 있던 그 공간을 주말에 우리 독서 모임을 위해 내어주실까? 어떻게 사정을 해야 할까? 허락을 받더라도 사용료를 내야겠지? 얼마나 요구할까? 이런저런 질문과 답변을 혼자 앞질러 해가며 카페로 찾아갔다.
카페지기는 이 건물의 회사측과 상의를 해야 한다며 잠시 자리를 비우더니 돌아와서 말했다. "사용해도 좋다고 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본래 취지에 맞는 용도로 활용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까지 덧붙여 주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일상의 기적들을 믿는다. 오늘 작은 것 같지만 생각해보면 엄청나게 큰 행운에 취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사실 나는 그런 체험이 꽤 많다. 가령, 지난주 지방에서 예정된 독서 모임을 깜박하고 취소된 줄 알고 있다가 정말 우연히도 그 모임을 여는 책방 주인이 다른 일로 무심코 안부 전화를 했다가 내가 깜박하고 있었던 사실을 알게 되어 큰 탈이 없었던 일은 사소한 예에 속한다.
맨 처음에 소개한 1세대 바리스타 아저씨의 카페 이름이 뭔지 빠뜨렸다. 이제 알려드릴 때가 된 것 같다.
Cafe Wonder.
세상은 작은 기적과 놀라움들로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