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지의 대상에 대한 믿음

<오뒷세이아(9~12권)> - 호메로스 독후감

whereIam 프로필 whereIam
2026-08-22 14:22
전체공개

영화를 보기 위해서 12권보다 더 진도를 빠르게 나가서 12권의 끝이 어디인지 되짚어 맺음점을 만들기 보다는 독후감마다 다른 시선으로 써 보는 것이 낫겠다는 마음이 들어 두서 없는 글을 적어본다.

책에서는 크세니아, 영화에서는 제우스의 법. 미지의 대상인 방문객에게는 우리식 호구조사를 하기 전에 일단 배불리 먹이고 잘 씻기고 호의를 베풀어 준다. 우리는 어디까지 모르는 자가 적의를 가지지 않았다는 것을 믿어줄 수 있을까? 그 믿음은 어디까지 지켜질 수 있을까?

이야기의 뒷부분으로 갈 수록 그 믿음들이 깨지는 순간이 온다. 퀴클롭스는 마치 새로운 간식처럼 오디세우스의 동료들을 먹어치웠고, 키르케는 호의를 베푸는 척 음식을 먹인 뒤에 찾아온 사람들을 다 동물로 바꾸어 버렸다.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은 그들에게 어떻게 비추어질까? 우리는 얼마나 서로를 믿고 호의를 베풀 줄 아는 사람인가.

보통은 어느정도의 믿을만한 룩이거나, 믿음직한 배경을 알고 있을 때 우리는 경계를 풀고 호의를 베푸는 것 같다. 최근 새로운 부서에서 아예 새로운 업무를 배우고 있는데 업무는 너무 생소하지만 원래 계시던 구성원분들이 매번 신경써서 배려해주시는 덕분에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퇴사하고 나의 직무 핏에 맞는 새로운 일을 하고 싶긴 하지만...- 그럭저럭 적응을 해 나가고 있다. 
만약 내가 어떠한 입사 절차를 통해 검증된 것이 아니고, 직업이 무엇인지 모르고 외양이 통상적인 직장인의 그것이 아닌 조금 불량하고 자유로워 보이는 외양이며 행동과 태도가 불량스러웠다면 이들이 전배 온 우리를 이렇게 챙겨주고 배려해줄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보면, 내가 반대의 입장이었다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다.

영화가 나오고 난 뒤에 이런 저런 평론가나 영화 유투버분들도 앞다투어 리뷰 영상을 올리고 있다. 그 중에 조승연 작가의 해석이었던 것 같은데 크세니아를 지킬 수 있는 이 믿음은 필수불가결한 조건이었을 거란 가설이다. 지금보다 훨씬 외지인의 드나듦이 적고, 그런 무역상 등을 통해서만 바깥과의 교류가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에서 오는 사람을 어느정도 서로 믿어주지 않는다면 인간적 교류 외에 대외적인 국가(?)의 확장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란거다. 오... 일리있는 말이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지금은 왜 그게 잘 되지 않을까. 
 환대를 했다가 피해를 본 경험이 너무 많아서?
 지금은 무조건적인 크세니아를 보이지 않아도 얼마든지 바깥과 연결되어(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있어서?

나의 디폴트 모드는 환대일까 경계일까. 그것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스스로를 돌아보고 다시 생각해보아야 하겠다.

목록

댓글

로그인하고 이야기에 함께해 주세요. 로그인

아직 댓글이 없어요. 가장 먼저 생각을 나눠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