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고, 무심하게 지나쳤던 것들을 생각하고, 기다리며 바라보기

<월든 (10장~)> - 헨리 데이비드 소로 독후감

자장가 프로필 자장가
2026-04-24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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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선배가 요즘 어떤 책을 읽고 있냐 하셔서 '월든'을 읽고 있다고 했더니, 그 선배는 '곁에 두고 가끔 아무 페이지나 펴 보게 되는' 책이라고 대답해주셨다.
한 달이 지나 두 번째 독후감을 쓰기 위해 책장을 다시 넘긴다. 처음 읽을 때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밑줄을 쳐 두었던 부분을 확인하고 내용을 기억하려고 했는데, 새로 밑줄을 치게 되는 부분이 자꾸 생긴다. 
문득 '이게 그런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번 읽을 때엔 이야기를 따라가며 내용을 이해하는데 신경을 쓰다가 정작 책을 즐기지 못했던 것이다. 어쩌면 이 책은 굳이 순서대로 읽어나갈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나의 독서 습관에 대해 돌이켜본다.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책을 욕심껏 구해놓고, 급하게 읽다가 지쳐버린다. 
나는 책을 '수단'으로 대하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 아닐까? 책을 많이 읽는 것에 연연해하기 보다는 좋아하는 책을 찾아내고 그것을 두고두고 즐기는 행복을 찾아봐야겠다. 좋아하는 그림책을 매일매일 읽어도 재미있어하는 아기들처럼.


나를 만든 것은 어떤 경험과 기억들이었을까? 특별하고 눈에 띄는 놀라운 순간과 경험의 기억들이었을까? 혹시 그 당시에는 그것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지나갔던, 너무도 평범했던 순간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쌓여서 나의 정체성과 그리움을 만든 것은 아닐까? 
여기에는 왜 밑줄을 그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던 문장들을 읽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시간은 내가 낚시질 가는 시냇물일 뿐이다. 나는 그 물을 마신다. 물을 마시는 동안 그 모래 많은 바닥을 내려다보며 그것이 아주 얕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 위를 흐르는 얕은 시냇물은 계속 흘러가지만, 영원은 남는다. (131)

월든 숲속에 들어가기 전에 나는 베이커 농장에서 살아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농장으로 가는 길에 슬쩍 사과를 따고, 개울을 건너뛰고, 사향쥐와 송어를 놀라게 했다. 그것은 내 앞에 무한히 길게 펼쳐질 것 같은 오후 중 한순간이었다. 그런 오후에 많은 사건이 벌어질 수도 있는데, 사실 인생은 상당 부분 그런 사건들로 채워진다. (271)

우리는 모든 것이 소박하고 단순했던 시절을 이야기했다. 또 살을 에는 차가운 날씨에도 사람들이 아주 맑은 머리를 가지고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대화를 나눈 시절도 얘기했다. 다른 마땅한 디저트가 없을 때, 우리는 영리한 다람쥐들이 오래전에 버렸던 도토리를 가져와 씹었다. 껍질만 두껍고 실속은 별로 없긴 했지만. (353)

나에게 지나간 평범했던 순간들은 어떤 것이었을까? 쇠락해가는 지방의 소도시에서 보낸 어린 시절이었다. 햇볕과 바람과 산과 강이 있었다. 아침이 되면 부산했고, 해가 지면 이내 어두워졌다. 어른들이 생활에 힘들어 할 때, 아이들은 좁은 골목과 햇살이 반짝이는 개천으로 몰려다녔다. 해질 무렵 낮게 날아다니던 제비들과 더 어두워지면 어디선가 나타다던 박쥐들의 날개짓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내 아이에게는 어떤 시간들이 쌓여가고 있을지 궁금하다.


'직박구리'는 파일 압축 프로그램으로 '새 폴더' 만들기를 하면 난데없이 나오는 이름이었다. '곤줄박이', '찌르레기', '오목눈이', '동고비', '개똥지빠귀', '어치', '쇠박새'는 어떻게 생긴지도 어떤 소리를 내는지도 알지 못하는 새이름들이었다.('새' 폴더 이름이어서 새의 이름이겠거니라고 생각했다.)
나무와 풀, 꽃의 이름을 찾아보기 시작한 것에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흔히 말하는 것처럼 나이듦에 따른 생리적 현상일 수도 있고, 산책과 등산을 계속하는 생활 습관에 기인한 것일 수도 있고, 오랜 사회 생활에서 사람들에 지쳐버린 것에 대한 반작용일 수도 있다. 아무려면 어떠랴. 
아직은 서툴지만 '생강나무'와 '산수유'를, '철쭉'과 '연산홍'을, '박새'와 '쇠박새'를 구별할 수 있고, 계절 따라 피는 꽃들을 기억하고 기다리는 즐거움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굳이 깊은 숲 속으로 가지 않아도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늘 거기 있었던 작은 생명체들을 찾아낼 수 있고, 그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놀라운지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며칠 전 아파트의 나무들 사이에 박새를 만났다. (아파트 단지의 오래된 느티나무와 산수유, 라일락 사이에서 박새, 찌르레기와 직박구리를 가끔 본다.) 처음엔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바라보지만, 올려다보는 나무 가지와 잎, 그리고 대조되는 밝은 하늘 때문에 나무의 어두운 윤곽 외에 새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필요한 것은 걸음을 멈추고, 조용히 기다리는 일이다. 그러면 흔들리는 가지를 찾을 수 있고 그 사이에서 작은 윤곽을 발견할 수 있다. 한 번 찾아내게 되면 잦은 움직임에도 이들이 어디 있는지를 따라갈 수 있다. 
진짜 놀라운 순간은 이들이 내는 소리를 내는 때이다. 요란한 몸짓을 하면서 소리를 내는 새들이 있는가하면 주둥이를 살짝 여는 것 같은데 복화술사처럼 아름다운 소리가 만들어 내는 새들도 있다. 한 줌도 채 되지 않는 작은 몸에서 크고 아름다운 소리가 나오는 순간은 경이로움 그 자체이다.
우리가 휴대전화에 이어폰에 주의를 빼앗기지 않기만 한다면 그들은 여전히 거기에 있다. 찬찬히 살펴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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