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

<월든 (10장~)> - 헨리 데이비드 소로 독후감

행님&데이베드&솔로 프로필 행님&데이베드&솔로
2026-04-23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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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벌레 안 무서워? 물어보는 친구들에게 나는 종종 중학교 시절 그 이야기를 들려준다.

방과 후 친구와 함께 집에 돌아가던 길,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친구보다 몇 걸음 앞서서 걷게 됐다. 뭐가 그렇게도 재밌었는지 나는 계속 떠들고 깔깔 웃었다. 갑자기 친구가 덥석! 내 어깨를 잡을 때 나는 왼쪽으로 고개를 슥 돌렸다. 진작에 내 시야에 들어왔어야 할 내 친구는 보이지 않았고 내 어깨 위에는 낯선 손님이 하나 있었다. 나비 애벌레. 예상치 못한 일은 종종 입을 틀어막는다. 읍! 나는 큰 나무 아래를 지나고 있었다. 애벌레와 나는 서로 당황한 시선을 주고 받았다. 벌레도 멈춰서 가만 보면 그렇게 징그럽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이놈도 나도 각자 열심히 뛰고 기고 먹고 살아보겠다며 애쓰다가 마주쳤던 것이다.

소로 못지않게 나도 가만히 집의 손님들을 탐구할 때가 있다. 가만. 사실 누가 손님인지는 명확지 않다. 몇 번의 이사를 거치며 나는 집이란, 누구의 공간도 아닌 공유 공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하지만 전월세 계약서를 썼기에 나는 그곳이 내 집이고 다른 이들은 손님이라고 여기는 편이었다.

많은 손님들 중 기억나는 이가 하나 있다.

처음 자취를 시작한 방, 그 집을 드나들 수 있는 문은 여러 개였다. 내가 드나들 수 있는 문이 하나였을 뿐이다. 4-5평 남짓의 방에서는 작은 벌레라도 인간과 평생 서로 모르고 살기가 불가능하다. 어느 날 밤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보다가 문득 천장 구석 한편에 거미가 눈에 들어왔다. 언제부터 저기 있었을까, 어제도 저기 있었나. 나는 침대 매트리스를 밟고 일어섰다. 나는 중학교 시절 획득한 벌레 응시하기 스킬로 거미에 대한 거부감을 지웠다. 거미는 길고 얇은 몸통에서 뻗어 나온 가는 다리로 집을 짓다가 거대한 물체를 느낀 듯 걸음을 멈췄다. 나는 입으로 살살 바람을 불었다. 4평 남짓 한 집을 짓던 거미는 자기 방구석으로 후다닥 도망쳤다. 저런 긴 다리를 가진 거미라면 필히 유교를 배운 양반 거미다. 한밤중에 자는 내 얼굴 위로 냅다 점프할 거미는 아닌 듯 보였다. 먹고살겠다고 들어와 사냥툴까지 깔아 놓은 양반을 나는 내칠 수 없었다. 그렇게 몇 주 나는 거미를 관찰했다.

그 배운 거미는 선을 명확히 지켰다. 천장 구석을 넘겨 집을 짓지 않았다. 침대 쪽 천장 모서리와 벽걸이 에어컨 사이 20cm 남짓이 그의 공간이었다. 게다가 부지런한 모습은 가끔씩 내 아침잠을 달아나게 했다. 전날 밤 눈인사를 하고 잔 거미는 아침에 눈을 뜨면 감쪽같이 사라졌는데 나는 그가 아침에 일(사냥)를 하러 나갔거니 생각했다. 거미가 집을 지어놓고 아침마다 일을 하러 나간다?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기에는 형편이 어렵다는 게지. 나는 낮에 가끔씩 내 방 창문의 방충망을 걷어 놓고 환기를 시켰다. 저녁 퇴근 후 돌아오면 거미는 먼저 집에 돌아와 피곤한지 잠을 잤다. 가끔 다시 매트리스를 밟고 일어나 약한 바람을 불어 거미를 흔들었다. 도망 대신 다리를 오므리는 걸 보면 필히 자던 중이었으리라. 귀찮게 하지 않고 나도 그럼 씻고 잠을 잤다.

어느 일요일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그 집은 비어 있었는데 평일 주말 구분 없이 출근하던 거미였지만, 나는 직감적으로 그가 떠났다고 느꼈다. 출근이 아닌 이사라고 나는 바로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감각의 가르침이었다. 그의 존재가 지워진 그 공간은 내 가슴을 허전하게 했다. 며칠 동안 저녁에 퇴근하면 벽걸이 에어컨 옆 그곳을 가장 먼저 바라봤지만 그곳은 계속 있었다. 20cm 남짓한 그 공간은 그보다 훨씬 길고 넓고 공허해 보였다.

월드 호수 옆 오두막집을 오고 가던 손님들처럼, 내게도 그런 손님이 있었다. 그 시절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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