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권까지 읽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의 조각들이 많아졌다.
본격적인 오디세우스의 모험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이지만 나는 궁금했다.
오디세우스는 왜 그토록 시간이 걸려도 집에 가고 싶었을까?
사실로만 따지면 오기기에섬에서 칼립소와 7년을 있었고,
그 섬의 장소가 나쁘지 않고, 칼립소의 사랑으로 자기에게 잘 대해주고, 심지어 평생 죽지않고 늙지 않도록 약속까지 받으면
크게 고향 생각을 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왜 그렇게 귀향을 하고 싶었을까?
또,
1권에서 텔레마코스는 아테나에게 결국 마지막에는 오디세우스가 살아돌아 올 것이라고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네스토르와 메넬라오스에게로 아버지의 생사를 물으러 가는 것일까?
이처럼 이런저런 생각의 조각들이 생겨났지만
하나의 단어로 말해보면 ‘인간의 복잡성’인것 같다.
5권 : “(…) 달콤한 인생은 그에게서 썰물처럼 빠져나갔으니, 요정은 그에게 더 이상 기쁨이 되지 못했다.”
5권 : “(…) 달콤한 인생은 그에게서 썰물처럼 빠져나갔으니, 요정은 그에게 더 이상 기쁨이 되지 못했다.”
1권 : “(…) 나는 예언자가 아니고 새 점도 잘 모르지만, 불멸의 신들께서 마음속에 던져주신 대로 지금 그대에게 예언하리다. 그가 사랑하는 조상들의 땅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소. (…)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오.”
위의 대사처럼 칼립소가 기쁨이 되었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기쁨이 되지 않아 불멸의 삶도 포기하고 떠나고 싶고
위의 대사처럼 칼립소가 기쁨이 되었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기쁨이 되지 않아 불멸의 삶도 포기하고 떠나고 싶고
오디세우스가 이타카로 돌아올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단 것을 알지만, 아들은 확신을 얻기위해 떠나는…
이런 모습들을 보면 인간들은 끊임없이 호기심을 갖고, 의미를 찾고, 존재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어하면서
동시에 끝없이 방황하고 불안정함, 불확실성을 느끼는 존재인것을 오디세우스와 텔레마코스의 이야기를 통해 들려주는 것 같았다.
(텔레마코스는 다른 이유도 있었던 것 같지만,,,)
더 나아가
나는 메넬라오스와 아가멤논의 귀향의 모습 또한 흥미로웠다.
4권에서 아가멤논은 귀향 전 전쟁때문에 노여워하는 신들을 달래기 위해 제사를 지낸 후 출발했고 메넬라오스는 전쟁 직후 바로 떠난 것으로 나왔다. 그렇기 때문에(?) 아가멤논은 일찍 고향에 도착하고 메넬라오스는 8년정도를 떠돌고 도착했는데 그 사이 아가멤논은 자신의 와이프에 살해당해 결국 비극적 결말을 맞이한다.
이것은 나에게 ‘삶의 아이러니?’, 혹은 ‘어찌할 수 없음?’으로 다가왔는데,
결국 거대한 운명은 인간이 바꿀 수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신들이 인간의 영역에 개입할때마다 인간이 내리는 선택의 순간순간을 보여주는 것도 같았다)
아무튼
이런 것들을 독자인 나는 ‘긴 이야기’를 통해 생각해보고 재미있어했다.
요즘 긴 호흡의 이야기를 읽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막상 오디세이아를 읽기 시작하니 재미가 붙었다.
그래서 지금 일리아스도 같이 읽기 시작했는데 확실히 이야기의 빈 곳들이 메워지는 것 같아 이해가 더 잘 된다.(쉽다는 것은 아니다)
공책에 신 이름들, 사건들을 적는 수고로움도 있지만 오디세우스가 이타카로 도착할 때까지 겪은 지난한 과정을
조금이나마 같이 느껴보며 읽는 것은 매우 가치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 재미있었던 포인트
+) 재미있었던 포인트
- 각 도시(나라)가 보여주는 환대의 문화는 매우 좋아보였다. 예전에 같이 읽었던 ‘낯선이에게 말을 건다면 혹은 선물’과 같은 책들이 떠올랐다.
- 새벽, 저녁, 배고픔, 잠 등에 대해 묘사하는 말들이 너무 재미있는데, 나중에 나도 이런 마인드로 생각하면 좋겠다 싶었다.
예) 내가 한 말이 언짢았다면 폭풍이 즉시 그 말을 낚아채 가버렸으면 좋겠소 / 내일 그대는 잠에 굴복해 드러누울 것이고 ~ / 신께서 내게 무한정 잠을 쏟아 부으셨습니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