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 영웅

<오뒷세이아(9~12권)> - 호메로스 독후감

산이화 프로필 산이화
2026-08-20 15:48
전체공개
  오뒷세우스 9권~12권은 주인공이 칼립소의 섬에서 7년을 보낸 후 도착한 스케리아에서 그동안 겪은 일들과 소회를 자신의 시점으로 회상하는 구간이다. 주인공이 트로이 목마를 노래한 데모도코스의 노래에 눈물을 흘리며 비로소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험난했던 귀향의 여정을 노래하는 부분으로 아마도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서사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도 먼저 12권까지 책으로 읽은 후, 놀란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가장 기대하고 궁금했던 장면들의 이야기가 가득 펼쳐지는 부분이었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신화적 에피소드가 유명 감독의 독특한 영화적 상상력과 현대 첨단기술로 스펙터클하게 재현된 영상은 단연 압도적이었다. 줄글을 읽으며 머릿속 상상만으로 있던 장면들이 실제 눈앞에서 펼쳐졌던 순간은 더없는 실재감과 짜릿한 흥분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값싸고 쉬운 CG를 사용하지 않고 최대한 실재 물성을 살려서 찍었다는 점을 미리 알고 감상하기는 했지만 아이맥스 화면의 광활함은 세 시간이라는 긴 시간을 순삭하게 만들었다. 물론 어느 장면은 영화가, 또 어떤 부분은 책이 더 감동적이었다는 말은 할 수 있겠으나 책으로만 만난 이야기와 영화를 본 후, 다시 책을 떠올려 본 내 시선에 분명 특별하게 달라진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은 오뒷세우스만 줄곧 따라가며 이야기를 해석하던 나의 눈앞에  조연으로만 보였던 여러 여성들이 주연처럼 내 앞에 툭툭 튀어나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영화를 본 후, 책으로 다시 돌아가 읽었던 곳을 꼼꼼하게 살펴보니 실제로 생각보다 많은 여성들이 주인공처럼 선명하게 다시 등장하고 있었다. 
  주체적인 지혜와 전략으로 20년 동안 권력을 지킨 페넬로페, 험난한 여정마다 나타나 도움을 준 나우시카아와 전지전능한 칼립소와 키르케, 지옥에서 만난 어머니, 심지어 엄청난 고통을 주는 세이렌, 스킬라, 카리브리스도 모두 여성으로 묘사되고 있었다. 주인공에게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고 환대와 도움을 주었으며 심지어 귀환을 방해하고 고통을 주는 방법으로 주인공의 영웅서사를 만들어 가는 여정에는 어김없이 여성들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3천 년 전 호메로스의 여성들은 남편을 대신해서 긴 기간 동안 권력을 쥐고 유지할 수도 있었고 상상불가한 어려움을 만들어 내기도,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도 알고 있으며 강하다는 남성들을 이끌어가는 당찬 여성들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고대 여성의 위치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주체적이고 강력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놀란 감독이 영상으로 보여준 여성의 이미지도 새롭게 보였다. 캐스팅 논란이 일었던 헬레나는 트로이 전쟁의 원인으로 치부된 절세미인이 아니라 전사를 상징하는 진한 흉터를 얼굴 채우고 이글거리는 눈빛과 표정을 가진 강인한 흑인으로, 아름다움의 상징인 아테네 여신은 수수하고 사색하는 유색인으로, 남자들을 유혹하는 키르케는 의지 가득한 뚱뚱한 중년 여성으로 등장시킨 것도 혹시 이런 의도는 아니었을까? 감독이 원전에 자주 언급되었던 성적인 부분을 영화에서는 거의 다루지 않은 것을 보면 우리가 그동안 이야기 속 여성에 대한 상투적인 해석과 관점에 대한 색다른 시선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세상을 이루는 가장 큰 존재는 인간이고, 인간은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지어왔다. 그리고 시대와 지역, 권력 여부에 따라 성에 대한 역할과 차별은 어느 방식으로든 정의되었고, 그에 따른 불평등 또한 지속되었으며 그것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우리가 오뒷세우스라는 이야기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은 수없이 많겠지만 고전의 다양한 해석을 통한 여성의 위치와 역할에 대한 새로운 논의가 좀 더 확장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은 고전이란 단순히 오래된 책이 아니라 ‘세월을 견디고 살아남은 책, 시대를 뛰어넘는 책, 언제 읽어도 사유의 폭을 넓히는 책’이라는 정의에 대한 증거로 충분한 것 같다. 3천 년을 넘게 다양한 장르로 끊임없이 변주되고 있으니 말이다. 부디 이번 영화가 쏘아올린 고전의 힘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고루 펼쳐지고 스며들어 사랑과 평화로 가득한 살만한 세상이 되길 기원해 보며 이쯤에서 다시 책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자~ 비록 세상은 바쁘고 할 일은 많지만, ~오뒷세이아! 13권, 나와라! 부드러운 제퓌로스(서풍)타고 끝까지 가즈아~ 다시 힘차게 출바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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