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뒷세이아 고고학

<오뒷세이아(9~12권)> - 호메로스 독후감

호떡 프로필 호떡
2026-08-14 14:05
전체공개
9장~12장은 여러 사건이 빠르게 진행되는 느낌이 들었다. 많은 이야기들이 저마다 복합적인 상징성을 가지고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흥미로웠다.

이번 책 오뒷세이아의 읽기 목적에는 단순 스토리 이해를 너머 고전이 갖고 있는 이면의 의미를 읽어내는 것이 있었기에, 사람의 입을 통해 오랜시간 전해진 구비문학이라는 점을 계속 상기하며 읽었다.

단순한 판타지나 상상력의 결과물만 보지 않고, 그 안에 녹아있는 당시 그리스인들의 경험, 종교관, 삶에 대한 통찰 등이 오랜 시간 쌓이고 물든 거대한 상징이라고 생각하며 읽었다. 그 안에 무엇이 있을까 애써 궁리해보기도 하였다. 
 
시대가 흘러도 사는 모습과 생각하는 방식이 비슷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텍스트를 해석하는 재료가 결국 우리의 한정된 경험뿐이기 때문일까, 어느 쪽이든 인간에게 요구되는 중요한 덕목들은 긴 시간을 초월해 반복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흥미로우면서도 허무맹랑했던 대목은 바람 자루를 열어버린 탓에 이타카 코 앞에서 다시 먼 바다로 휩쓸려 간 장면이었다. 이 에피소드가 굳이 서사시에 포함된 이유가 있을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불신과 소통의 부재가 초래하는 위기, 그리고 이를 경계하는 리더쉽이 당대에도 우두머리의 덕목으로 강조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데스에 내려가 망자를 불러내는 의식에 정형화된 절차와 방식이 존재하는 것 또한 당대의 종교적 문화와 연결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피는 언제나 생명과 죽음을 구분하는 가장 직접적인 상징같다. 상상해보건데 외상으로 죽는 이가 많았던 시대라 그랬을까, 아니면 온기와 생명력을 부여하는 피가 고갈된 상태를 죽음으로 규정했기 때문이었을까 생각했다. 또 죽은 자의 영혼을 희미한 그림자로 묘사하였는데, 생명력을 잃고 영원히 짙은 어둠에 갇힌 망자의 무기력함을 굉장히 잘 비유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자는 빛의 이면을 벗어날 수 없디는 절대적 경험치가 죽음의 속성을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3천 년이라는 아득한 세월이 흘렀지만 인간이 빠지는 유혹의 종류와 위기에 처한 심리는 전혀 이질감 없이 다가온다. 사후 세계와 영적 존재를 바라보는 시선 역시 현대인이 원초적으로 품고 있는 호기심과 다를게 없다.

8장까지의 내용에 비해 분량은 짧았지만, 사건의 밀도와 전개 속도는 훨씬 빼곡하게 느껴진 9~12장이었다. 내일 모임에서 다른 분들은 이야기 안에서 어떤 다채로운 상징과 이야깃거리를 발견했을 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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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시논 프로필 시논 | 1개월 전
읽기의 고고학 멋지네요. 사실 고전을 읽는 ‘고전적인’ 이유이기도 하지요. 그속에 어떤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이 담겨 있는가. 그들도 몰랐던 무의식을 행간에서 찾아내기도 하지요. 그때 발견하게 되는 낯선 것의 익숙함, 익숙한 것의 새로운 자각.
고고학자가 될 때 한동안 엄청난 노역(노가다 일)을 견뎌야 한다더군요. 오랜 시간 땅에 묻혀 있던 유물이나 유적, 화석을 곡괭이와 삽, 호미로 파내고는 표면에 달라붙거나 묻어 있는 이물질들을 솔로 털고 벗겨내는 수작업을 거쳐야 비로소 본래의 원형을 볼 수 있다는 거지요. 그러고도 그것은 출발점일 뿐, 그때부터 읽어내기와 해석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지금 자신의 선입견이나 편견에서 벗어나는 것, 애정어린 호기심과 과감한 상상력을 동원한 가설의 적용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읽고 있는 걸까요. 넘쳐나는 정보 덕분일까요, 다들 이젠 인간의 삶을 다 안다는 듯 식상해 하는 것 같아요. 아닌가요. 표현을 안 할 뿐인가요. 표현을 하지 않다 보면 표현할 것도 점점 사라집니다. 생각이 죽어가는 거지요. 삶도 시들어 가는 거지요. 글쓰기가 소중한 이유입니다. 호떡님이 그렇단 얘긴 아니라는 건 물론 아실 테지요. 말이 길어졌네요. 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