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요 척!

<피가 흐르는 곳에 (척의 일생)> - 스티븐 킹 독후감

베리굿 프로필 베리굿
2026-02-27 11:25 (수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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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항상 불안속에 살고 있다.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 무지와 불확실함에서 오는 불안감이다.
척의 할아버지의 경우 그 반대이다. 척의 할아버지를 보면 다락방에서 본인의 미래 죽는 모습을 미리 보게 된다. 그후 절망적인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죽음의 날을 기다리며 불안속에 살아간다. 척도 다락방에 올라가서 병으로 죽게되는 자신의 미래 모습을 보게 된다. 병으로 죽어가는 절망적인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미리 알게 된다면 그후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허망하고 두렵고 불안할까. 사람은 의미와 희망으로 살수 있는건데 의미와 희망대신 절망과 허무함이 대신할 것이다.
사람들은 미래를 모르는 불안감으로 살아간다. 나 역시 생로병사에 대한 두려움, 요샌 급속도로 변하는 이 사회 직업까지 대체해버리는 AI 등장까지 생존마저 위협하는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불안사회다. 
사람의 운명이란 게 정해져 있고 그 비극적인 끝을 알고 살아간다는 건 현재에 집중하기 매우 힘들 것이다. 사람은 사랑, 믿음, 소망으로 살아가는데, 그것 대신 비극적인 끝을 알면 두려움 불안 공허함으로 살아가야 하니 현재는 우울할 것이다. 
10년도 전에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이란 영화를 봤다. 주인공은 자신이 당할 사고를 미리 목격하게 된다.  그 사고를 피하려고 갖은 방법을 다 써서 벗어나려 하지만 어떻게든 그 일은 다른 식으로 반드시 일어난다. 마치 일어나야 할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는 정해진 운명처럼.
인상깊었던 부분은 마지막에 지구 저 반대편 나비 한마리 날개짓이 주인공이 죽게 된 사건에 영향을 미쳤던 것이 놀랍고 신기했다.  작년 가을 경기도 오산 상가주택 2층에서 바퀴벌레 한마리가 나와 에프킬라와 라이터로 바퀴를 태워 죽이려다 화재가 났다. 같은 건물 5층에 살던 출산2개월 된 산모가 그 사고로 죽게 되었다. 한마리 바퀴벌레의 출몰 때문에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영문도 모르는 천재지변이 전혀 엉뚱한 사람에게 떨어진 것이다. 그리고 2개월된 아기는 엄마를 알지 못하고 평생 살아가야한다. 이처럼 우리의 삶은 주변 환경과 사람들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지만 보이지 않아서 그 진짜 원인이나 시초를 파악조차 못할 수도 있는 것 같다. 한사람 한사람의 개념없음과 의식수준이 한 아이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나의 정해진 운명의 끝은 모르지만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삶속에서, 사건 속에서 나에게 주어진 길이 예정되어 있다고 느껴진다. 어떤 때는 내가 원치 않은 일이지만 가슴이 시킨다.  머리로는 저항하는데 가슴이 아우성쳐서 ‘싫다’하는 이성의 멱살을 잡아끌고 비논리적인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할 때도 있어 스스로 힘들 때도 있다.
일찍이 집을 나와 살던 나는 자취와 하숙을 했다. 정황상 살던 곳에서 이사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도 있었다. 또 어느 시기가 지나면 머리로는 저항하지만 가슴으론 떠나라고 해서 사는 곳을 옮겼다. 이사를 한 7번 정도 하며 머리로는 정말 귀찮다 하기 싫다 하지만 가슴이  시켜서 나도 모르는 이끌림에 이사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자주 사는 곳을 옮겨야 하는 이사병이 있나 싶기도 하고 한 거처에서 오래 살 수 없는 불만족의 병이 있나 싶었다. 남들은 한 곳에서 만족하든 안하든 꾸준히 오래 사는데 나는 왜 이럴까 진짜 이상하다 라는 고민을 했었지만 가슴은 이사를 할 수 밖에 나를 못살게 만들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전에는 알지 못했던 목표로 나를 인도하는 것 같다.
이사를 하면서 특정 사람들과 쉐어메이트가 되게 되고 그 사람들의 영향으로 그때그때 내 진로의 방향성이 바뀌어졌다. 그렇게 바뀌어진 지역과 장소속에서 다양한 사람과 환경을 겪음으로써 지금의 내가 있다. 그땐 한 곳에 적응할 만하면 옮기라는 이상한 내면의 목소리 때문에 힘들었다.
그렇게 이사를 가고 적응해 살면서도 힘들어만 했지 큰 의미를 몰랐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나의 진로에 영향을 줄 그 특정한 사람들을 이어줄 하나님의 큰 그림으로 계획된 신의섭리 같다.  과정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때는 내가 겪고 있는 부분밖에 보이지 않아 알 수 없어 힘들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총체적으로 보니 나는 몰랐고 원치 않았지만 나에게 결핍된 어떤 부분을 채워주고 어떤 결과물로 인도하는 가장 적합한 길이 였던 것 같다.
얼마 전에도 겪었다. 내가 원하지 않지만 어떤 일을 하라고 강한 이끌림을 받을 때가 있다.
머리로는 ‘이건 아니야’ 라고 하지만 난 머리로는 저항해도 가슴이 시키는대로 할 수 밖에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을 주시려고 신이 인도하심을 결과로써 알게 된다. 논리로는 합당하지도 않고 매우 말도 안되는 일들을 한 후 후회하고 속쓰려 우울해하기도 한다. 내가 나 자신을 못살게 구는 것 같다. 시간이 흘러보면 그 고난을 겪고 연단해야지만 어떤 열매를 획득할 수 있는 일들인 것 같다. 보통의 평범한 날들로는 할 수 없는 경험을 하게 하셨다. 종교적인 세계관으로 신이 어떤 계획이 있으실 것이라고 저항 하지않고 받아들이며 나아간다면, 가장 좋은 방향으로 삶의 문제가 하나씩 해결된다는 믿음을 가진다. 의미를 모르고 걸어갈 떈 힘든 일이지만 그 믿음을 도구로써 의미를 구하려고 계속 생각 하다보면 알아진다. 
결정적인 선택의 순간에 특정순간에 어떤 부분을 헌신하고 결정적인 선택을 했던게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던 것 같다. 이 전환에선 항상 특정부분의 헌신이 있었고 만남이 있었다. 하나님은 나를 장소로 이동시킴으로써 연결시켰던 것 같다. 특정한 만남을 통해 인생에 방향성이 영향받고 의미와 가치의 힘을 부여해주는 것 같다. 자신만의 경험, 자기 인생의 의미를 찾아내서 자신의 온전한 사람을 그 의미에 따르게 하려는 절박한 필요와 갈망은 가슴에서 오는데 내 것이 아니라 정해진 운명의 인도하심 같다.
척은 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자란 고난을 어린시절부터 겪었지만 조부모님의 사랑으로 큰 공허함 없이 컸다. 본인이 병에 걸려 임종을 둔 미래의 모습을 보았지만 낙담하지 않았다. 순간순간 마주하는 우연한 상황속에서 저항하지 않고 궁금하고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길거리 공연에서 갑작스런 댄스를 추는 장면을 보면 순간순간을 긍정적이고 행운처럼 받아들이고 즐긴다.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삶에 만난 사람들, 겪은 사건들 이 모든 일들이 저마다 의미가 있었고
그의 삶을 채워준 할머니 할아버지, 댄스 선생님, 담임선생님, 할아버지의 유언을 전달하는 공증인, 길거리 공연 마저도 이 모든 게 의미 있었고 신이 주신 선물이 었다는 걸 알게된다.
척은 이들에게 영향을 주고 의미를 주는 존재 였다. 당시에는 알 수 없었지만 죽음앞 현실세계와 너머세계의 경계에 서서 인생의 파노라마를 총체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모두다 서로서로에게 영향과 사랑을 주고 받고 있었고 이 모든게 선물이었다는 것을.
Thank you, Chuck!  Thanks Chuck!
불확실하고 불안한 현재를 불완전한 인간이 근시안적인 눈으로 살아가는 과정으로써 삶의 부분을 걸어가고 있는 우리의 순간은 너무 힘들 수 밖에 없다.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서 ‘왜’라는 질문은 아무도 확실히 대답해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각자를 향한 그 계획이 어떤 것이든 우리는 그분의 지혜와 자비를 신뢰할 뿐이지요…. 그 계획은 우리가 이해하도록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오직 믿음을 가질 뿐이지요.”  -레이건 대통령-
 
레이건 대통령이 한 말처럼
신의 계획이 있고 그에 대한 믿음, 소망, 사랑을 가지고 살아갈 때 불완전한 ‘나’가 앞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을 걸을 때도 덜 초조하고 보이지 않는 가치와 의미를 추구하고 발견하며 순간을 관조하며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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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B동 사감 프로필 B동 사감 | 1일 전
자신의 죽음을 알고 난 후 그 사람의 태도나 대처 방식을 보면 그 사람이 진정 어떤 사람인지 진면목이 드러나게 되는 것 같지요. 척의 할아버지와 척은 그런 점에서 대비가 됩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어떤 옥탑방 같은 신통한 곳에서 미래 자신의 죽는 모습의 환영을 보지 않더라도 우리는 자신이 언젠가(수십 년 이내) 죽을 거란 사실은 분명히 알고 있지 않나요? 애써 모르는 척, 잊은 척, 생각하고 싶지 않은 척, 그러다 정말로 잊고, 생각 안 하고, 모르는 것과 별 차이 없이 바쁘게만 살아가는 건 아닐까요? 말씀하신 하나님의 섭리도 신앙도 가슴의 끌림도 결국에는 자신의 생각과 해석과 선택을 거쳐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고마워요, 베리굿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