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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연결을 위한 새로운 열쇠

<침묵에서 말하기로> - 캐럴 길리건 독후감

산이화 프로필 산이화
2025-12-19 16:01
전체공개
  ‘침묵에서 말하기로’는 한 호흡으로 끝까지 읽어 내기가 무척 버거운 책이었다. 
내용 자체가 연구 논문처럼 딱딱하기도 했고, 저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연구 대상의 인터뷰 목소리가 심리 전문가의 언어로 된 해석과 관점이 내 것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어서 내용을 소화하고 이해하기가 조금 어려웠던 것이 이유였던 것 같다. 사실 그것보다는 작가가 끝부분에 언급했던 '여성 성인기의 삶을 여성 자신의 언어로 설명해야 정체성의 개념이 생긴다'라는 말을 통해, 나는 여성으로서, 엄마로서, 딸로서,..수많은 나의 정체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고, 책에 소개된  딜레마 상황에서 나라면 어떻게 답변을 했을 것인가? 그 목소리로 해석될 나의 도덕, 권리, 판단 등은 어떻게 정의될 것인가?와 같은 생각들이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기 때문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맞다.

  독서 초기에는 남편이 언젠가 언급했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이 자꾸 생각났다. 제목도 익숙하고 30여 년도 전에 이미 잘 팔렸던 책이었다는 기억은 있지만 가벼운 연애 지침서 정도려니 해서 나는 정작 읽지 않았던 책이다. 그런데 거의 책을 읽지 않는 남편이 어느날, 본인은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여자(나, 어머니)가 자기와는 너무 다른 사람이란걸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그 이후에야 어머니와 나를 이해할 수 없었던 이유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고, 갈등이 생겼을 땐 답답해서 화부터 내려고 하기보다는 나름 참고 받아 드리려고 노력해야 한다는걸 알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게도 본인이 동굴로 들어가고 싶어할 때를 제발 알아차려 주고, 그 땐 제발 말을 걸지 말아달란 부탁도 잊지 않았었다. 그 어느 날이 그토록 갈등하고 싸우기를 거듭 반복하던 50줄에 들어선 그 어느 날 쯤이었던게 문제였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 삶에 그 책이 나름 긍정적인 도움을 준 것은 분명하다.
   
  이런 식으로 지금의 ‘나’에게서 조금씩 거슬러 올라가면서 이 책을 읽어 나갔다. 남성인 남편과 여성인 ‘나’, 남성인 두 아들과 어머니로서의 ‘나’ 청년기, 유년기의 ‘나’를 더듬어 가면서 이 책의 저자의 주장에 비추어 나를 해석해 보는 방식이다. 내 삶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콜버그가 남성은 연결보다는 독립, 관계보다는 개인을 중시하여 권리의 도덕으로 서로의 권리를 침해할까봐 걱정한다는 의견은 일견 동의하게 된다. 이에 반해 길리건이 여성은 관계와 상호의존을 중요하게 여기고 맥락적 판단양식을 가진다는 말에 양육자로서 여성인 나에게도 그 말도 얼추 내게도 잘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된다. 그러나 청년기, 유년기의 ‘나’는 여러 도덕적 딜레마 상황에서 대답하는 표본 연구자들과는 많이 다르다는 생각도 했다. 나의 이런 생각은 우리 가족의 범위와 환경, 한국이라는 특별한 사회 문화적 상황에서 살아낸 생각과 느낌이고, 저자도 말했듯이 책에서 인용한 세 가지 연구의 대상자 표본이 매우 작고 기간도 종단연구로 보기엔 짧다는 점에서 저자의 주장을 모두 일반화해서 동의하기는 어렵기도 하다.
   
  더불어 이 책이 내게 던진 놀랄만한 사실은 내가 대학에서 그토록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외우던 교육심리학자들(삐아제, 콜버그 등등)의 이론들도 실은 연구대상도 생각보다 소규모였고 여성이라는 변수는 제거한 채 남아에 맞추어 정립되었었다는 것이었다. 이는 무척 충격적이었는데, 왜 그동안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인간 발달 심리학을 정의하고 진리처럼 믿고 외우고 심지어 꿰어맞추어 가며 인간을 이해하고 교육해 왔을까? 추호의 의심도 없이 주어진 이론을 믿고 의지해 온 나의 내면과 자아는 어떤 발달과정을 겪었던 것일까? 계속되는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그런 면에서 작가는 책을 통해 우리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다르게 생각할 필요와 당위를 재촉하는 느낌이 들었다. 여성을 포함한 인간 본성을 이해하려는 인사이트를 세상에 던진 시점이 1982년이라고 하니 나는 그보다도 40년도 지나서야 뒤늦게 이런 자각을 했다고 생각하니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정말 차고도 넘친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은 여성과 남성이 도덕과 자아를 이해하는 관점을 위계질서와 그물망의 이미지 형태로 설명하는 부분이었다. 남성과 여성은 ‘관계’를 다르게 구성하기 때문에 상대의 표현을 왜곡하여 서로를 이해하는데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위계구조적 관점(남성)에서는 꼭대기에 혼자 있고자 하는 열망과 타인과 가까워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볼 수 있고, 그물구조적 관점(여성)에서는 관계의 중심에 있고자 하는 소망과 가장자리로 떠밀리는 것에 두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취와 소속에 대해 전혀 다른 그림을 그리게 하고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게 하며, 선택의 결과를 평가하는데도 상이한 결과를 이끌어 낸다고 설명한다. 이것은 여성인 내 경험과 주위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떠올려보면 성별에 따른 말과 행동이 차이가 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그럴듯한 근거가 되었다. 작가는 이것을 마지막 장에서 책임의 언어가 위계질서를 관계의 그물망으로 대체하고 권리의 언어가 돌봄의 그물망에 타인 뿐만 아니라 자신을 포함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말로 마무리한다.
   
  작가는 ‘여성의 경험과 관점이 남성과 다르다는 것을 인식함으로써 도덕적 성숙에 대한 이해를 확장하고 인간 발달을 이해하는 관점을 바꾸어 더 생성적인 삶의 방식을 가능하게 할지 상상할 수 있다’라고 결론을 맺고 있다. 진심으로 동의하고 이 분야에서 새롭고 믿을만한 많은 연구들이 쏟아져 나오기를 진심으로 기대해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신중지의 딜레마를 통해 여성의 자아와 도덕, 위기와 전환, 권리와 판단, 도덕적 성숙을 말하는 것은 좀 불편했다. 그 상황은 연결에 수반되는 책임과 돌봄을 극대화하는 스트레스 속에서 진행될 것이기 때문이다. 북클럽에서 만나서 서로 많은 생각과 의견을 나누고 싶은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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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A동 부사감 프로필 A동 부사감 | 17일 전
책의 내용과 함께 산이화님의 경험을 대비시켜 가며 생각을 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남녀나 세대, 문화권의 차이에서 오는 물음에 대해서는 만나서 함께 이야기해 보면 좋겠네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