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뒷세이아 (1~8장)> - 독후감
파트너의 찌질함에 질려버린 나의 지인은 완벽한 인간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다. ‘도대체 완벽한 인간은 있는가, 그 인간은 어떤 형태를 띄고 있을까?’ 나의 지인의 이 질문을 생각하며 오뒷세우스를 읽었다. 인간 영웅은 어떤 모습을 띄고 있는가? ‘영웅’과 ‘인간’, ‘완벽함’과 ‘인간’은 공존할 수 없는 것인가? 우리는 이 불완전한 인간을 얼마나 받아들이고, 얼마나 참아주고, 얼마나 인정해야 하는 걸까?
18페이지.
저들도 자초한 잘못으로 제 몫의 운명보다 더한 고생을 벌고 있잖은가
652페이지. <해설 중>
여가, 음악, 수월한 삶, 그리고 값을 치르지 않는 향락, 이 모든 것이 올륌포스 신들의 전형적인 존재 방식이며, 지상의 인간들에게는 무엇보다도 낯선 삶의 방식이다. 따라서 이들의 방식은 신의 진노를 불러일으킨다.
156페이지.
어떤 자들의 땅에 오게 된 걸까? 주제넘고 거친 데다 올바르지 않은
자들이려나, 아니면 손님들을 아껴주고 신을 두려워할 줄 아는
분별력이 있는 자들일까?
<오뒷세이아>는 인간은 신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인간은 인간의 한계를 받아들여야 한다, 감히 신의 자리를 넘본다면 무례한 것.
인간은 분수를 알아야 한다, 도를 넘으면 대가를 치뤄야 한다. 인간은 제 몫의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
운명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책임을 다 해야 한다.
오뒷세우스가 이렇게 말할 것 같다, “도대체 이 운명의 몫은 언제 끝나는데?” 물론 영웅은 그리 말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인간의 즐거움은 어디에 있을까? 오뒷세우스는 언제 웃을 수 있을까? 감정 표현에 매우 솔직한 옛 사람들은 눈물을 잘 보인다, 현대 성인 남성이라면 어색할 것 같은 눈물 짓는 장면이 흔하다. 하지만 웃음 장면은 보이지 않는다.(적어도 8권까지는.)
나는 웃는 인간이 보고 싶다. 완벽은 언제든 웃을 수 있는 여유 아닐까? 여유는 신의 영역인가? "왜 왜 인간은 띵가띵가, 빈둥빈둥 놀면 안 되나요? 오뒷세우스, 이만큼 고생했는데 집에서 편히 쉬면 안 되나요?"라고 오뒷세우스 대신 항변하고 싶다.
(완벽한 인간을 찾는 여정은 계속 됩니다.)
인간은 분수를 알아야 한다, 도를 넘으면 대가를 치뤄야 한다. 인간은 제 몫의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
운명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책임을 다 해야 한다.
오뒷세우스가 이렇게 말할 것 같다, “도대체 이 운명의 몫은 언제 끝나는데?” 물론 영웅은 그리 말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인간의 즐거움은 어디에 있을까? 오뒷세우스는 언제 웃을 수 있을까? 감정 표현에 매우 솔직한 옛 사람들은 눈물을 잘 보인다, 현대 성인 남성이라면 어색할 것 같은 눈물 짓는 장면이 흔하다. 하지만 웃음 장면은 보이지 않는다.(적어도 8권까지는.)
나는 웃는 인간이 보고 싶다. 완벽은 언제든 웃을 수 있는 여유 아닐까? 여유는 신의 영역인가? "왜 왜 인간은 띵가띵가, 빈둥빈둥 놀면 안 되나요? 오뒷세우스, 이만큼 고생했는데 집에서 편히 쉬면 안 되나요?"라고 오뒷세우스 대신 항변하고 싶다.
(완벽한 인간을 찾는 여정은 계속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