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발견
쓰는 인간
단층 촬영기로 파악되는 게 인간의 본질은 아니다. 물리적 성분이나 생물학적 회로만 봐서는 인간성이란 포착되지 않는다. 거기에 측량 가능한, 가령 키나 무게, 근육량과 골밀도, 지방과 단백질 함양 같은 것의 수치는 나와도, 지혜 용기 자제력 신의 성실 겸허 공감력 같은 건 알 수 없다. 인간을 이해할 때 후자가 훨씬 중요하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
난중일기
어제 지난 글을 읽다가 맨처음 매일 글을 쓰기로 결심한 문장을 봤다. 그새 많이 느슨해졌다. 순간순간 마음속에서 오간 흥정과 타협과 정당화의 결과다. 오늘 문득 난중일기를 떠올렸다. 전란 중에 하루하루 일기를 써내려간 무장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아마 비슷한 궁금증에서 김훈 작가는 <칼의 노래>를 쓰게 되지 않았을까. 그때 매일 붓을 든 장군이...
부서진, 아름다운 삶
몇 해 전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돌아가셨다. 고통스런 날이 이어졌다. 어머니, 형, 그리고 나는 끝없이 울부짖었다. 전에 느껴본 적 없는 극도의 슬픔을 느꼈다. 하지만 사흘 후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나는 인스타를 스크롤하며 다른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고 있었다. 갑자기 집이 조용해졌다. 아무도 울고 있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보니 우리 세 사...
노젓기
오전에는 그런 대로 바람까지 불어 견딜 만했던 날씨가 어느새 폭염으로 바뀌었다. 실내의 에어컨 냉기와 바깥의 열기를 번갈아 오가다 보면 냉방병, 여름 감기에 걸리기 딱 좋은 날씨다. 애용하는 운동 기구 중에 노젓기가 있다. 틀림없이 영어로 부르는 이름이 따로 있긴 할 텐데 내겐 그냥 노젓기다. 그걸 한 번에 250회씩 한다. 그래 봐야 10분이 안 ...
살이 뜯겨나간 청새치
헤밍웨이의 마지막 작품 <노인과 바다>에서 주인공인 늙은 어부는 초대형 청새치와 사투 끝에 낚는 데 성공하지만 선체에 묶어 돌아오는 도중 피냄새를 맡고 몰려온 상어떼에 살이 뜯겨 결국 항구에 도착했을 때는 뼈만 남게 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주의를 조각조각 빼앗기다 보면 삶은 형해화한다. 삶은 시간과 주의로 구성된다. 시간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
감사
요즘은 휴대전화로 직접 통화하는 경우가 드물다. 더구나 걸려 오는 전화는 070으로 시작하는 스팸성이 대부분이다. 아니면 아주 다급한 상황이거나. 오늘 오후에 걸려온 전화가 그랬다. 발신자가 형이었다. '내일 보기로 했는데, 급한 일로 취소를 할 모양인가...' 여름 휴가철에 맞춰 주말에 서울로 와서 저녁 식사를 같이 하기로 되어 있었다. "지금 고속...
다시 30대로 돌아간다면
저속 노화란 말이 유행인가 보다. 소셜미디어며 인터넷에 이 말이 자주 눈을 침범한다. '회춘'이라든가 '노화 방지'라는 말이 애당초 터무니없음을 알게 된 현대인에게 이제는 좀 과학적으로 들리게 '느리게 늙는 법'으로 새로운 마케팅을 시작한 모양이다. 천천히 늙는 게 좋은가. 어떤 사람은 (대개는 신체적 노쇠와 불편, 노환을 동반한) 노화의 더디고 고단...
기괴하다, 생기롭다
기괴하다 출근길엔 항상 그렇듯 지하철에 앉을 자리가 없어 서있었다. 그러다 내 오른쪽으로 3m 떨어진 곳에 자리가 났는데, 아무튼 멀어서 내 자리는 될 수 없었다. 자리가 비는 순간 앞에 서있던 2명이 움찔했는데 젊은 아가씨와 밀짚모자를 쓴 아주머니였다. 아주머니는 아가씨에게 앉으라는 양보의 손짓을 보냈다. 아주 아름다운 모습이 아닌가? 그런데 그 ...